‘울보 MVP’ 허웅의 결심 “감독님이 1년 더 하신대요…이 멤버로 다시 우승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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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감독님과 골프를 쳤거든요. 1년 더 하신다고 해서 결심했죠. 이 멤버로 다시 우승을 해야겠다고.”

프로농구 부산 KCC를 2023~2024 KBL 챔피언결정전 정상으로 이끈 가드 허웅(31)은 우승 주역들이 함께한 ‘골프 회동’ 뒷이야기부터 들려줬다. 플레이오프 기간 인터뷰에서 사퇴를 암시하는 뉘앙스의 발언을 해 주위를 놀라게 한 전창진 감독이 1년 더 지휘봉을 잡겠다는 뜻을 밝혔다는 사실을 조심스럽게 공개했다. 그러면서 “감독님께서 결단을 내리신 만큼 다음 시즌에도 이 멤버 그대로 다시 한 번 우승을 해야겠다는 목표가 생겼다”고 힘주어 말했다.

KBL 최고 인기 스타에서 이제는 챔피언결정전 MVP로 발돋움한 허웅을 8일 경기도 용인시의 KCC체육관에서 만났다. 이날 오전 선수단과 함께 고(故) 정상영 KCC 명예회장의 산소를 다녀왔다는 허웅은 “KCC는 아버지(허재)께서 감독으로 몸담으셨던 곳이다. 어릴 적 전주체육관을 따라다니며 응원했던 구단이 KCC였는데 내가 이렇게 우승을 이끌게 돼서 감회가 남다르다”면서 “이번 우승은 명예회장님의 유지를 받들어 우리 모두가 합심한 결과물이라고 생각한다. 또, 새로운 연고지인 부산 농구팬들의 열정도 큰 힘이 됐다. 전주 농구팬들께는 죄송한 마음이 크지만, 언제나처럼 우리를 응원해주셨으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KCC는 5일 열린 챔피언결정전 5차전에서 수원 KT를 88-70으로 꺾고 정상을 밟았다. 모두의 관심이 쏠린 MVP는 기자단 투표에서 84표 중 31표를 받은 허웅이 차지했다.

2014년 데뷔 후 처음으로 우승의 달콤함을 맛본 허웅은 “5위로 플레이오프를 시작했지만, 100% 우승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정규리그와 플레이오프는 다른 만큼 우리 전력이라면 충분히 정상까지 갈 수 있다고 믿었다”고 했다.

6강 플레이오프에서 서울 SK를 물리친 KCC는 4강 플레이오프에선 정규리그 1위를 차지한 원주 DB까지 꺾으며 기세를 올렸다. 이어 챔피언결정전에서 4승1패를 거두고 통산 6번째 우승을 달성했다. 역대 프로농구에서 5위에서 우승까지 도달한 사례는 KCC가 처음이다.

주전 가드로서 살림꾼 노릇을 도맡은 허웅은 5차전 종료를 앞둔 시점부터 울음을 터뜨렸다. 평소 감정표현이 많지 않은 선수라 당시의 뜨거운 눈물은 큰 화제가 됐다. 허웅은 “주위에서 그 이야기를 많이 하시더라. 팬들께선 ‘국민 울보’라는 별명을 지어주셨다. 나는 차마 눈물 영상은 다시 보지 못했다”며 웃고는 “농구를 시작한 뒤 그렇게 울어보기는 처음이다. 많은 감정이 교차해서 나온 눈물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행복함이 더 컸다”고 했다.

이번 챔피언결정전은 올 시즌을 앞두고 전주에서 부산으로 둥지를 옮긴 KCC와 과거 부산을 연고지로 뒀던 KT의 맞대결이라는 점 그리고 허씨 형제의 자존심 싸움이라는 점에서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동생인 KT 가드 허훈을 상대로 판정승을 거둔 허웅은 “(허)훈이가 닷새 연속 링거를 맞고 있다. 자신을 극한까지 내몰았더라. 우승을 해서 기쁘기는 하지만, 챔피언결정전이 끝난 뒤 녹초가 된 동생을 보면서 안쓰러운 마음도 들었다. 지금도 집에서 한 발짝도 나오지 못하고 있다”며 안타까운 심경을 드러냈다.

허웅과 이승현, 송교창, 최준용, 라건아 등 막강한 라인업을 보유했음에도 정규리그 내내 고전하면서 어려움을 겪은 KCC 전창진 감독은 플레이오프 기간 인터뷰에서 “깨끗이 잘하고 물러나겠다”며 사퇴를 암시하는 발언을 남겨 궁금증을 안겼다. 해당 인터뷰를 접한 허웅을 비롯해 KCC 선수단 전원이 놀란 이유다.

그러나 허웅은 “어제 감독님 그리고 최준용과 골프를 쳤는데 라운드 도중 감독님께서 ‘일단 1년을 더 하시겠다’고 하시더라. 갑자기 그렇게 말씀하셔서 놀라기는 했지만,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고 전날 골프 회동 뒷이야기를 공개했다.

이어 “사실 감독님의 거취는 우리들에게도 큰 이슈였다. 오늘 아침에도 그 이야기가 나왔다”면서 “감독님께서 결단을 내리신 만큼 우리에겐 다음 목표가 확실히 생겼다. 지금 멤버 이대로 차기 시즌에도 우승을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선수들끼리 굳이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같은 마음을 먹었으리라고 생각한다”고 각오를 밝혔다.